2004 베트남

첫 여행의 설레임은 빗줄기를 타고

이젠씨21 2014. 6. 5. 15:23

 

2004년 7월 21일 수요일

 

오전 7시. 한국에서 였다면 아직 한참 꿈나라를 헤메고 있을 시간이었지만 첫 베트남 여행에 대한 설레임때문인지 일찍부터 눈을 떳다. 지난 밤 우리 일행이 도착할 무렵부터 내린 비가 아직도 그치지 않고 계속내리고 있었다. 객실 창 밖으로 비에 젖은 하노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밤 늦게 도착한 탓에 하노이의 정취를 전혀 느껴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던 터라 비 때문에 겪게 될 여행의 불편함 따위는 아랑곳없이 야자수 드리워진 남국의 도시 정취가 그저 반갑기만 하다.

 

일정에 따라 호텔에서 아침을 먹었다. 관광객이 많은 호텔답게 외국인의 입맛을 고려한 베트남식 퓨전음식이 주종을 이루었다. 함께 온 일행들은 은근히 다행이라는 표정이다. 오기 전부터 베트남 특유의 음식이 가지는 향취 때문에 고생을 할지 모른다는 걱정이 조금은 수그러드는 모양이다.

 

어제의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인해 달라진 일정을 소화하려면 조금은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는 가이드의 말을 들으며 식사를 마친 일행은 육지의 하롱베이라고 알려진 탐콕으로 향했다. 폭우에 가까운 비가 계속내리는 가운데 자동차로 이동하는 동안 스치며 지나치는 차창밖 베트남의 풍경은 흥미진진함으로 가득차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도로를 가득 매운 오토바이들이다. 한국에 와 있는 베트남 친구들을 통해 베트남의 오토바이에 대해 익히 들어오기도 했어도 막상 수백대의 오토바이들의 오토바이 전체를 감싸는 우비를 덮은 채로 끊없는 행렬을 이루고 교통신호에 맞추어 경주를 하듯 일제히 도로를 질주하는 모습을 직접 보면서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도로를 따라 늘어선 집들은 그 모양이 너무도 특이해서 도로에 접한 전면은 3m 정도로 좁은 반면 뒤로는 10m가넘는 긴 직사각형을 이루며 낮은 단층에서부터 높게는 4, 5층까지 올라가는 기이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똑같은 모양의 집들이 마치 한 건물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벽을 맞대고 있는데, 같은 높이의 집들이 붙어 있어 하나의 큰 건물처럼 보였고 서로 다른 높이의 집들이 붙어 있는 것은 마치 길이가 다른 막대그래프를 입체적으로 붙여 그려놓은 것 같았다. 도로에 접한 면의 폭에 따라 세금이 달라지기 때문에 집 모양이 좁고 길어진 것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일행의 입에서는 '특이하다' 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하노이를 벗어나자 개방이후 개발의 붐이 일고 있는 도시와는 달리 도로 양편으로 끝없이 펼쳐진 논과 군데군데 자리한 작은 마을들이 눈에 들어왔다. 넓은 농경지와 작은 마을들 그리고 빗속에서도 베트남 전통모자인 농을 쓰고 열심히 일하는 농부들를 보면서 일행 모두가 농촌의 모습은 한국과 비슷하다는 말을 주고 받는데 이내 시선을 사로 잡는 것이 있다. 물이 가득찬 논 한가운데 자리한 공동묘지들이다. 적당하게 논과 경계가 지어진 평지에 벽돌이나 시멘트로 만든 집모양의 무덤들이 한데 모여진 특이한 집단묘지는 베트남 친구들에게서도 들어보지 못한 장묘문화였기에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두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후 우리는 먼저 점심식사를 하고 일종의 나룻배인 삼판을 타고 탐콕을 둘러보기로 했다. 점심식사는 호텔에서와는 달리 베트남의 현지식이었다. 한국말을 꽤 잘하는 십대 초반 어린 소녀들의 안내로 밥과 함께 베트남 현지 채소로 끊인 국 그리고 만두와 비슷한 렘잔 등으로 차려진 식사를 했다. 일행 중 베트남 음식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잘 먹는 내가 신기했나 보다. 나는 선입견을 버리고 일단 도전해보라는 말로 힘을 실어주면서 나름대로 맛있는 식사를 했다.

 

 

 

 

식사 후 삼판을 타고 본격적인 탐콕지역 탐방을 했다. 오랜 기간 동안 물에 의해 침식작용을 거친 석회암이 만들어낸 기암절벽과 동굴로 이루어진 절경이 한 시간 남짓한 물길을 따라 펼쳐져는 장관을 빗속에서 감상하는 운치가 큰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함께 탄 수녀님과도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한국에서의 활동과 연결된 서로의 고민과 베트남에 오면서 가지게 된 여러가지 생각들, 그리고 짧게나마 느낀 베트남인들의 삶의 모습에 대해 나누고 이해하는 좋은 시간이기도 했다. 탐콕지역은 관광지이면서 또한 전형적인 농촌이기도 했기 때문에 전형적인 베트남 농촌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도 했다. 노를 저으며 관광객을 안내하는 현지인들은 대부분 이 지역 농부들이라고 한다. 운이 좋은 날은 한 시간 정도 소요되는 물길을 하루 10여 차례 가량 노를 저으며 관광객을 실어 나른다는 탐콕의 삼판지기들. 이들이 버는 평균수입은 하루 4~5달러에 불과하단다. 그것도 매일 보장된 수입은 아니다. 그래도 농사만 짓는 것보다는 훨씬 수입이 나은 것이란다. 도이모이 정책으로 문호를 개방한 이후 이곳을 찾는 수많은 관광객을 상대하면서 아예 생업을 바꾸기까지 한 사람도 적지 않은 듯했다.

 

 

 

아름다운 절경을 빗속에서 배를 타고 맞보는 즐거움과 삼판지기와의 어설픈 대화를 통해 알게 된 그들의 삶의 단편 그리고 물길의 끝에서 끈질긴 호객꾼으로 변하며 관광객에게 물건을 파는 그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안타까움이 한데 뒤섞이면서 내 안에 일어나는 알 수 없는 갈등과 고민이 베트남에서 지낸 7일간 내내 머리 속을 맴돌며 나를 괴롭혔다.

 

탐콕 일정을 마치고 하노이에서 가장 번화가인 호안키엠 호수 인근에서 베트남의 전통 수상인형극을 보기위해 다시 빗속을 뚫고 두 시간 여를 달려 돌아왔다. 수십년째 같은 장소에서 공연을 하고 있고 10여년 전부터는 세계무대에 진출하기도 했다는 인형극은 물을 무대로 나무로 만든 인형의 움직임과 전통음악이 어우러진 공연이다. 십여개의 짧은 단막극이 각각 베트남의 전통적인 생활풍습과 신화를 표현하고 있다. 공연은 물과 관련된 풍습과 설화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데 하루종일 내리는 비를 보면서도 베트남인들의 문화에서 물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느낌을 받았다.

 

 

공연관람 후 베트남식으로 변형된 한식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우리는 한국에서부터 중요한 일정으로 계획했던 현지의 한국인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연수가 짧은 일정이었기에 현지에서 오랫동안 베트남을 느껴 온 한국인을 통해 베트남에 대한 이해를 좀더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잡은 계획이었다. 일행이 찾은 곳은 국제협력단사무실. 협력단 관계자와 대사관 관계자를 만나 현지에서 벌이고 있는 다양한 사업에 대한 안내와 자신들이 느낀 베트남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우리 일행의 관심사는 주로 현지인들이 느끼는 한국에 대한 생각과 한국에서 돌아온 베트남인들이 다시 현지적응을 하기 위한 지원프로그램 개발의 가능성 등이었다. 서로의 관심사가 달라서 였을까? 한 시간 여의 대화를 통해 새롭고 만족할 만한 내용의 정보를 많이 얻지는 못했다. 다만 대화 내내 자존심 강한 베트남인들에 대한 느낌만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저녁 9시를 넘기고 숙소인 호텔로 가는 길에 베트남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중원카페에 들러 'BIA HANOI'를 마시며 하루동안 느낀 베트남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모두가 한결같이 하루종일 보았던 베트남의 풍광이나 한국과 다른 문화의 특이함에 대해서 보다는 잠시 스치며 지나친 것이나 다름없는 탐콕 삼판지기들의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씁쓸함과 안타까움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다들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기때문일까? 평생 한번 볼듯 말듯한 그 어떤 수려한 경치와 특이함보다도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더욱 가슴 아파하고 있는 우리 일행이 새삼 믿음직스러워졌다. 짧은 일정이나마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베트남을 느끼고 배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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