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베트남

無 題..

이젠씨21 2014. 6. 5. 15:47

 

2004년 7월 22일 목요일

 

여행 3일째. 창밖의 날씨는 좀 흐리기는 하지만 비는 그친 상태다. 하노이에

도착한 첫 날부터 쉬지 않고 비가 내린 것을 생각하면 이제는 그칠 때도 되었다는 순진한 생각을 하면서 하루의 공식일정이 시작되기 전에 잠시라도 하노이 거리를 홀로 걷는 즐거움을 누려볼 마음으로 호텔을 나섰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는데 호텔 주변의 거리는 벌써부터 오가는 오토바이와 사람들로 가득했다. 작은 오토바이에 짐을 싣고 어딘가를 향해서 바쁘게 가는 사람들, 아침 일찍부터 물건을 사기위해 흥정을 하는 사람들, 조그마한 거리 음식점 앞에서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쌀국수(PHO)를 먹는 사람들, 건축공사장에서 벽돌을 나르고 있는 사람들.. 호텔로 돌아오면서 순식간에 쏟아지는 폭우를 만나 준비성없이 움직인 대가를 톡톡히 치르기는 했지만.. '베트남의 활력을 느끼려면 이른 아침 거리로 나가보라'던 누군가의 말이 실감나는 아침이었다.

 

아침 첫 일정으로 찾은 곳은 바딘 광장. 베트남의 혼이라고 표현하면 지나친 말일까? 근대 베트남의 아버지 호치민이 영면에 들어 있는 곳. 하얀 제복을 입은 의장대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우리 일행의 마음은 한발한발 엄숙함을 더한다. 한평생을 불꽃처럼 살다가 마침내 영원한 등불이 된 한 혁명가 앞에 잠시 두손을 모으고 저마다 마음속 깊이 담아 온 무엇인가를 전한다. 참배를 마치고 나오면서 '호치민이 바랬을 베트남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에 잠시 걸음을 멈췄다. 외세의 억압에서 벗어나 국가와 민족의 자존을 확립하면서 전 베트남 민중이 풍요롭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나라를 바랬을 것이다. 자신은 베트남을 사랑하여 베트남 국민과 결혼했다며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 간 아름다운 영혼. 그가 세상을 떠난지 35년이 지나는 오늘 빗줄기 추적이는 회색빛 광장 한 귀퉁이를 걷고 있는 여행자의 발걸음에 뜻모를 한숨이 베어나오는 것은 무슨 연유에서일까?

 

 

바쁘게 정해진 일정으로 인해 아쉬움이 남는 바딘광장을 뒤로 하고 베트남 최초의 대학이었다는 문묘로 향했다. 한국으로 말하면 국자감 또는 성균관같은 곳이다.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인 유교가 베트남에 자리를 잡으면서 고급 교육기관인 문묘가 만들어졌고 유교를 받아들이면서 당시의 지배층은 강한 유교적 사상을 뒤받침으로 나름의 통치 질서를 확립했던 것이다. 베트남은 다른 인도차이나 국가와는 달리 중국으로부터 유교문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국가였으며 얼마나 깊은 영향을 미쳤는지 문묘의 유적은 말해주고 있었다. 오랜 역사 속에서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유교의 영향은 오늘날에까지 무시할 수 없는 문화적 전통으로 자리하고 있다. 

 

평소 한국에 와있는 베트남인들을 대하면서 그 문화적 행태가 한국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사회주의 국가교육을 경험한 그들이 철저한 가부장적 관습과 강한 가족주의 그리고 이에 근거한 조상숭배에 집착하는 모습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더니 어설프나마 직접 와서 보고나서야 조금은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비슷한 과정을 겪은 한국이 오늘날 베트남보다 유교 문화적 잔재가 덜한 이유는 아마도 현대에 와서 서로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 데서 연유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며 일행을 따라 이번 여행의 공동일정 마지막 장소인 하롱베이로 출발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수려한 경치로 유명한 이곳은 베트남인들에겐 하늘의 도움으로 거대한 용이 내려와 적을 물리쳤다는 민족적 자긍심이 서려있는 전설을 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3일째 계속내리고 있는 빗속을 뚫고 하노이에서 자동차로 4시간을 달려 도착한 하롱베이. 여기저기 해변을 따라 늘어선 제법 규모있는 휴양소 건물들이 이곳이 북부 베트남 최고의 휴양지임을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위의 호텔에 여정을 풀고 빗속에 어렴풋이 보이는 하롱베이의 신비감에 빠져 들었다.

 

모두가 잠자리에 든 시간. 메모장를 꺼내 몇글자 끄적이다 말고 가만히 내려다 본 밤바다에 한척의 배가 불빛을 밝히고 있었다. 비스듬히 기대앉아 빗줄기 섞인 바닷바람을 맞으며 잠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자니 겨우 3일이 지나고 있을 뿐인데도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비와 바쁜 일정 때문에 어쩔 수없이 지나칠 수 밖에 없었던 많은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더해간다. 내일은 배를 타고 하롱베이 안으로 들어간단다. 비가 오지 않기를 기대하지만 일기예보는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를 예고하고 있다.

'2004 베트남'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복의 조건  (0) 2014.06.05
쎄옴을 아시나요?  (0) 2014.06.05
얼굴들..  (0) 2014.06.05
첫 여행의 설레임은 빗줄기를 타고  (0) 2014.06.05
기다림과 인내 속에 만난 하노이  (0) 2014.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