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베트남

막연히 왔다가 도전을 받고 가다..

이젠씨21 2014. 6. 5. 18:28

2004년 7월 26일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날이라는 아쉬움때문이었을까? 창밖으로 들어오는 하노이의 아침 햇살이 왠지 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전 내내 귀국 준비를 하면서 마지막 하루를 보낼 계획을 세우다 결국은 아무런 계획없이 발길 가는대로 한껏 여유를 부리며 하노이를 느껴보기로 했다.

 

짐을 정리해서 맡기고 난 후 무작정 나섰다. 하노이 볼거리의 대부분이 모여 있다는 호안키엠 호수 주변의 구시가를 중심으로 그동안 가보지 못한 곳을 돌아보고 싶었다. 지나가는 씨클로를 잡아 타고 하노이 시내 지도를 보여주면서 가고자 하는 곳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처음 타보는 것이어서 일까? 사람이 직접 발로 페달을 밟아 움직이는 씨클로에 몸을 싣고 지나며 느끼는 하노이 거리 풍경은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탔을 때와는 사뭇 다르게 훨씬 더 이국적이었다.

 

 

기대를 안고 찾아간 모든 박물관과 기념관들이 월요일은 휴관이라 내부를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실망하지 않고 여기저기 하노이의 거리를 기웃거리며 다녔다. 귀국 선물을 살 요량으로 기념품 가게들이 늘어선 시장거리를 따라 십여 곳이 넘는 실크가게를 들락거리며 흥정도 하면서 외국인 관광객의 티도 내고, 해 떨어진 호수가의 작은 노천카페에 앉아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어울려 맥주도 한잔하면서 바쁜 일상을 잊고 그저 여유를 즐기러 떠나온 여행자처럼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냈다.

 

해저문 호안키엠 호숫가 노천카페에 앉아 몇 시간 후면 떠나야 할 하노이의 야경을 감상하는데 문득 지난 일주일의 기억이 돌이켜 지나갔다.인천공항에서 느꼈던 불안함과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에서 느꼈던  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던 첫 인상. 그칠 줄 모르고 쏟아지던 나흘 간의 비와 그 빗속을 뚫고 달리는 수많은 오토바이들. 가는 곳마다 탄성을 자아내게 했던 자연 풍광과 그에 어우러진 남국 특유의 정취들 그리고 또... 준비할 틈도 없이 밀어 닥친 자본과 개발의 논리 앞에 힘없이 무너져가는 삶속의 아픔들...

 

 

생각해보니 베트남에서 보낸 지난 일주일동안 나는 무엇인가를 찾아보려고 애를 썼던 것 같다. 그 덕에 짧은 일정이었지만 많은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돌아가면 베트남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술이라도 한잔하면서 베트남에서 본 것들과 경험하고 알게 된 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보다 친숙해진 분위기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베트남 친구들 하나하나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 혹시라도 하노이 근처라고 하면 지도를 펴 놓고 손가락을 짚어가며 웃음을 나누는 사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귀국한 후에 맞이하게 될 삶에 대한 이야기도 하게 될 것이다.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겠지만 같은 경험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으리라!

 

돌아가면 다시 밀려오는 일에 쫓겨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야 할 우리 일행들. 처음 베트남에 올 때 가졌던 나름의 기대를 충분히 채우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짧은 경험이나마 베트남에서 직접 보고 느낀 것들은 모두에게 있어 훌륭한 자양분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그저 막연하기만 했던 것들이 조금씩 조금씩 구체적인 모습을 갖게 될 것이다.

 

‘막연한 마음으로 왔는데...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어요.’ 이틀 전 베트남 여행의 느낌을 정리하면서 누군가가 했던 말이 이코노미 좁은 좌석에 비껴 누워 잠을 청하는 여행자의 귓전에 잔잔하게 울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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